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일본 진출에 시동을 거는 한국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일본 벤처투자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다 기시다 정부가 경제 전반의 효율성·생산성 제고를 위해 사회 각 분야의 디지털전환(DX)에 속도를 내면서 새로운 먹거리가 늘고 있어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되고 있는 투자혹한기로 국내 스타트업 업계가 자금경색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일본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다.
# 지난달 20일, 국내 ICT(정보통신기술) 스타트업 14개사는 전세계 1위 CRM(고객관계관리) 솔루션 업체 세일즈포스의 일본지사가 도쿄 세일즈포스타워에서 개최한 IR 행사에 참가했다. 이들 스타트업은 현재까지 50억 달러(약 6조원)를 투자하고, 30개 이상의 기업을 상장시킨 세일즈포스의 벤처캐피탈(VC) 세일즈포스벤처스의 까다로운 사전심사를 통과한 뒤 초대장을 받았다. 이들만을 주인공으로 한 IR(투자유치)피칭 행사장은 일본 대기업과 VC 20여곳에서 온 150여명의 임직원으로 북적였다.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업자인 NTT 도코모의 고위직 임원은 발표회가 끝난 뒤 '다중차량 배차 솔루션' 스타트업 위밋모빌리티의 직원을 따로 불러 "통신 기반 물류 서비스를 함께 개발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며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건냈다.
최근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일본 정부가 스타트업 육성에 본격 나서면서 국내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일본 정부는 향후 5년간 스타트업 투자규모를 현재의 10배 수준인 10조엔으로 늘릴 예정이다. 일본 기업들도 디지털 전환(DX) 가속화와 내재화를 위해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DX 전문성을 갖춘 파트너를 적극 찾고 있어 이 부문 강점을 지닌 K스타트업들에겐 일본 공략의 적기로 인식되고 있다.
2일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일본에 K스타트업을 알리는 행사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코로나19로 중단된 후 3년 만인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DX 분야 진출을 위한 전시·상담회 '코리아 ICT 엑스포 인 재팬'(Korea ICT Expo in Japan)을 연 뒤 매달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도 지난해 10월부터 K스타트업을 일본 시장에 소개하는 '재팬부트캠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주일한국대사관도 4월부터 디캠프 등 유관기관의 지원을 받아 '도쿄스타트업포럼'을 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도 신한퓨처스랩재팬과 함께 올해부터 '일본 진출 및 파트너 협약을 위한 IR피칭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에서 기회를 잡으려는 K스타트업이 늘면서 현지 진출을 돕는 코트라의 도쿄IT지원센터, 중진공의 도쿄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지금 입주 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1~2년은 대기해야 할 정도다. 중진공 도쿄GBC 김건 소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어림잡아 100개사 넘게 만난 것 같다. 현재 독립형 오피스가 18개실 뿐이라 더 늘려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DX 스타트업 진출 적기
일본에 K스타트업 진출이 활발한 이유는 DX 수요가 확산되고,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현재가 진출 적기라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 시장조사업체인 후지키메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DX시장이 2019년 7900억(약 8조원)에서 2030년 3조4000억엔(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일본 정부는 DX 가속화를 위해 2027년까지 10조엔(91조원)을 투자해 관련 스타트업 10만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100곳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국 내 DX 기업에 연구비를 지원한 해외 VC·AC(엑셀러레이터)에게 투자비의 3분의 2를 보조하는 한편 해외 스타트업에게 최대 1년의 특정활동 비자도 발급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도 내놨다.
이미 한국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올인원 비즈니스 메신저 '채널톡'을 운영하는 채널코퍼레이션은 2018년에 일본에 상륙한 뒤 일본 내 고객사 1만4000곳을 확보했다. 현재 전체 매출 중 약 20%가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다. 실시간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 운영사 스푼라디오도 비슷한 시기 일본에 진출, 지난달 약 50만명의 일본 이용자를 확보했다.
일각에선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섣불리 일본 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도시바, 샤프 등 5만여 일본 고객사를 확보한 알서포트의 서형수 대표는 "일본 시장은 보수적이어서 공략 난도가 높다"며 "사업모델의 현지화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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